(25년 7월 23일) '자연 노후'일까 '시공 하자'일까... 법원의 구별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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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10-28본문
[이지영의 하자이야기]
이지영 변호사"이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발생한 노후 현상일 뿐 하자가 아닙니다.” 하자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입주민 측이 하자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시공사 측에서 이렇게 반박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창호 변색, 벽체 탈락, 방수층 들뜸, 타일 줄눈 벌어짐 등 여러 항목에 대해서는 ‘하자냐, 노후냐’의 경계선이 애매해지는 것이지요. 입주 3~5년 후 진행되는 소송에서 이런 게 특히 많습니다.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이를 구별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은 ‘통상적인 내구연한’과 ‘예상 사용수명’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산지방법원 사례(2025. 2. 12. 선고 2022가단301605 판결)를 살펴보죠. 유리 파손 하자의 원인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단열간봉을 강화플라스틱이 아닌 일반 알루미늄으로 시공하고, 삼중유리 중간층도 강화유리가 아닌 반강화유리로 시공하는 등 하향 시공을 한 점이 하자의 원인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시공사 측은 유리에 시트지를 부착하거나 냉장고를 유리 전면에 배치하는 등 입주민의 사용상 문제와 관리 소홀, 그리고 시공 완료 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생한 손상이라는 점을 들어, 자연 노후나 복합적 원인에 의한 파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시공사의 하향 시공과 유리 파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시공 후 2년이 지난 시점에 파손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자연 노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법원은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자연 노후를 인정하지는 않으며, 자재의 기대수명, 해당 부위의 사용 환경, 시공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상 사용기간 내 발생한 기능적 또는 외관상 손상은 하자로 보고 있습니다.
하자와 자연 노후의 경계는 기술적인 영역에 해당하므로 대부분 사건에서 법원은 감정인(건축 감정 전문가)의 판단을 따릅니다. 감정 결과에서 ‘자연 노후로 판단됨’이라는 의견이 나오면 입주민 측은 소송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 감정에서 ‘시공상의 문제 또는 자재 하자로 판단됨’이라는 의견이 도출되면, 소송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연 노후와 하자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차이는 수억 원의 보수비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송의 승패는 입주민이 얼마만큼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자 소송은 법과 기술이 만나는 영역인 만큼, 감정 준비와 법적 논리를 동시에 갖추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자의 발생 시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입주민 측에 있으므로, 입주민은 제척기간 내에 하자가 발생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사전에 확보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입주 초기의 정기 점검 결과, 관리사무소 보고서, 입주자 자체 조사 사진 및 회의록 등은 훗날 소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척기간이 도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대해 하자보수를 정식으로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가능하면 조기에 법무법인을 선임해 채권양도 절차와 함께 하자항목 목록을 정리해 발송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절차는 제척기간 도과를 방지함과 동시에 시공사가 향후 ‘단순한 자연 노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고, 해당 항목이 일정 시점 이전에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실무상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법원이 감정 시 자연 노후를 반영해 감가상각을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다수의 감정 결과에서는 사용승인일로부터 감정일까지 매년 5% 내외의 비율로 보수비가 감액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동일한 하자라도 소송 제기가 1~2년만 늦어져도 수천만 원 이상의 보수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시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자가 의심되는 경우는 최대한 조기에 감정 및 법률 검토를 받아보고, 가능한 한 빠르게 권리행사에 나서는 것이 유리합니다.